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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의 글쓰기-이오덕, 양철북

 

 하버드를 졸업하고 40대에 접어든 직장인들이 '대학 시절 가장 도움이 된 수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글쓰기'라고 대답했다. 하버드 졸업생이 아닌 나 역시도 글쓰기가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고 있다.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지는 않지만 글이 삶에 끼치는 영향력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지난 일 년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처음에는 한 줄 써 내려가는 것도 버거웠다. 쓰고 싶기는 하지만 머릿속에 있는 단어들을 글로 쓰는 게 어렵게만 느껴졌다. 결국에는 의미만 비슷한 문장을 쓰기도 했다. 

 

 일년이 지난 지금은 내가 생각하는 바를 글로 이어지게 하는 게 덜 힘들다.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지만 첫 시작과 견준다면 조금은 나아졌다고 볼 수 있다. 글쓰기는 나에게 있어 죽을 때까지 하고 싶고, 제일 잘하고 싶은 것이다. 글을 쓰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겪고 있는 문제를 글로 보면 거리감이 생긴다. 이 틈은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부정적인 감정도 끼적거리지만 결국에는 더 인간적인 삶에 대한 나의 욕구를 써 내려간다. 비슷한 나의 삶의 방향을 쓰다 보니 좀 더 그러한 삶을 향한다는 생각도 든다. 

글쓰기를 통해 좀 더 나다운 삶을 살다보니 자연스레 글쓰기 관련 책에 관심이 간다. 요즘은 이오덕 선생님의 책을 읽고 있다. 이오덕 선생님은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교사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 보여'서 공무원을 그만두고 교원시험을 보았다. 1986년 독재정권의 강압에 못 이겨 그만 학교를 떠냐야 할 때까지 마흔세 해 동안 아이들과 함께 지냈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살리는 길을 개척하였다.

 

 저자의 책을 읽으면 아이들을 향한 사랑과 아이들을 죽이는 교육과 행정을 하는 선생님, 관료, 부모님을 향한 질책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저자의 단호한 표현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거다. 나는 거부감보다는 아이를 위한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풀어주어서 시원한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오덕의 글쓰기>를 읽으면서 나의 학창시절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내내 일기를 썼는데 거침없이 나의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선생님의 칭찬을 받고자 선생님이 좋아할 만한 일들로 일기를 채웠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게 정답인 줄 알았다.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기 위해서 글을 쓰면 담당선생님이 나의 글을 고쳐주는 일이 많았다. 아무리 내 생각대로 글을 써도 선생님은 빨간 줄을 긋고, 심사위원들이 좋아할 만한 문장을 대신 써주셨다. 그 당시 선생님이 글을 써서 내가 상을 받는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다들 이렇게 상을 받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나의 불편한 감정을 덜어냈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될 때까지 글이라는 것이 글쓴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읽는 이 가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행위라고 여겼다. 글을 통해서 치유받고, 성장할 수 있다는 말들에 대해서 확신보다는 의심이 컸다. 

 

 저자는 "이제는 삶을 떠나 거짓스런 글을 머리로 꾸며 만드는 흉내내기 재주를 가르치는 것이 '글짓기'고, 참된 삶을 가꾸는 정직한 자기표현의 글을 쓰게 하는 교육이 '글쓰기'가 되어버렸다."(p.98~99)라고 말한다. 글짓기와 글쓰기를 같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정직한 자기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야 말로 글쓰기의 출발이다. 

 

 삶의 글은 삶의 말로 써야 한다. 삶의 말은 나날이 쓰는 정다운 우리의 말, 나 자신의 말이다. 빌려온 말, 유식을 자랑하는 말, 남의 말이 아니 쉬운 우리말이다. 사실을 보여주는 말, 진실을 느끼게 하는 말, 가슴에 와닿는 말이다.(p.115) 나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자어와 외국어를 쓰는게 멋져 보였다. 나의 진솔한 감정보다는 유식함을 드러내는 말이 더 좋은 글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은 좋은 책이라기보다는 수준이 떨어진다고 여긴 적도 있다. 지금은 저자처럼 삶의 말로 이루어진 글을 좋아하고, 그 가치를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하루 동안 입에서 나오는 단어, 휴대폰을 사용해서 보내는 문자 메시지를 확인해보면 남의 말이 나의 삶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시를 쓸 때는 먼저 쓰고 싶은 것이 있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자기가 겪은 일을 다시 잘 생각해 내어서 그 일을 지금 막 그 자리에서 그대로 겪는 것처럼 생생한 말로 써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어린이들이 쓴 감동이 담긴 시를 가끔 읽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p.168) 시뿐만 아니라 글을 쓸 때 어떤 내용을 써야 할 지 막막한 경우가 많다. 겪은 일을 쓰기에는 글이 부족하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아이들 역시 교과서의 정형화된 시, 어른들의 글을 보고 솔직하게 자신의 삶을 쓰는 것을 머뭇거린다. 저자는 겪은 일이 글의 좋은 소재라고 말한다.

 

 자기의 삶을 정직하게 쓰고, 자기의 아픔과 괴로움을 속 시원히 털어놓는 아이들은 그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사람이 그 가슴속에 쌓인 답답함을 털어놓는 것은 마치 숨을 쉬는 것과 같다. 생명은 이렇게 해서 자기표현으로 자라나는 것이다. 표현은 손재주가 아니라 숨 쉬는 행위다.(p.373) <이오덕의 글쓰기>를 읽고 가장 가슴에 남는 문구다. 자기표현을 할 줄 아이는 숨을 쉴 수 있다. 자기표현이 눌린 아이들은 자기 파괴적인 방식으로 표출할 가능성이 높다. 글쓰기는 아이들의 억눌린 감정을 솔직하게 쓸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한다. 성적과 점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글쓰기가 필요하고, 그것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오덕의 글쓰기:글쓰기의 시작, 양철북, 이오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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