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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 - 루이스 세풀베다, 열린책들, 2016

루이스 세풀베다 


1949년 칠레에서 태어났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고 피노체트의 독재 정권에 맞섰던 그는 당시 많은 칠레 지식인들이 그러했듯 오직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 망명해야 했다. 그 후 수년 동안 라틴 아메리카 전역을 여행하며 글을 쓰고 환경 운동을 펼치다가 1980년 독일로 이주했으며, 파리를 거쳐 1997년 스페인 북부 아스투리아스 지방의 히혼에 정착했다. 현재 작가이자 출판인으로 활동하며 해마다 <이베로아메리카 도서 살롱>이란 이름의 문화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정치적 탄압으로 사라진 실종자들과 그 가족들의 아픔을 다룬 영화 <어디에도 없다>를 기획하여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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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은 구절

진정한 반항아도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지만, 맞서 싸워 이겨 낸다고 말이야.(p.47)

 

"여러분을 이곳으로 데려온 건 제가 아니에요. 전에 이름을 갖고 싶다고 무작정 납배나무를 떠난 적이 있잖아요. 들판을 돌아다니면서 전 정말로 많은 걸 깨우칠 수 있었답니다. 특히 느림의 중요성을 말이죠. 그리고 아주 힘든 경험이긴 했지만 이번에도 아주 소중한 사실을 하나 깨닫게 됐어요. 민들레 나라는 저 먼 곳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간절한 마음속에 있었다는 것 말이에요." (p.93)


이름이 없는 달팽이들 속에서 달팽이가 '왜'느린지에 대해 궁금증을 품은 달팽이가 등장한다. 이름이 없고, 느린 이유에 대한 해답을 찾는 여정 속에서 '기억'이라는 이름을 가진 거북이를 만난다. 거북이는 달팽이에게 '반항아'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반항아'는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면서 다가오는 것을 목격하고, 뜻이 맞는 달팽이들과 함께 '민들레 나라'를 찾아서 떠난다. 

 

'반항아'가 곧 인간들이 들이닥칠거라고 이야기하지만 변화 없는 삶 속에서 살아가는 몇몇 달팽이들은 떠나기를 거부한다. 달팽이 이야기지만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 달팽이들의 일상은 대중문화에 길들여진 채,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남의 생각대로 살고 있는 인간의 삶을 대변한다. 이렇게 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변화를 꿈꾸어도 세상이 변하지 않을 수도 있고, 변화 그 자체를 시도하는 것조차 귀찮을 수도 있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집단적 행동양식인 관습은 그대로 머무르는 것을 옹호하고, 틀을 벗어나는 것을 반대한다. 누군가 벗어나려고 하면 자신들의 세상을 오염시키는 행위로까지 바라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반항아 기질을 내뿜으며 나선다는 것은 크나큰 용기가 필요하다. 굳어져 온 흐름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어찌 보면 홀로 길을 떠나는 '반항아'일지도 모른다.

 

참고로 읽는 내내 달팽이가 왜 느린지가 궁금했졌다. 찾아보니 '주변을 인지하는 것이 느리기 때문에 움직임이 느린'것이라고 한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을 1초라도 줄이기 위해서 우리는 내비게이션에서 가장 빠른 길을 선택한다. 속도는 24시간이라는 시간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늘려 놓았다. 빨라진 만큼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하게 된 꼴이다. 속도로 인해  삶의 질이 향상했는지 의문이 든다.  

 

바쁜데 주변을 둘러보며 자연도 즐기고,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껴보라고 말하는 것이 배부른 소리 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살 수 없는 삶 속에서 자연과 타인과 공생하기 위해 속도를 조금은 늦춰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에게 가끔은 달팽이의 속도가 필요해진다. 

 

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 열린책들, 루이스 세풀베다 저/시모나 물라차니 그림/엄지영 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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