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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읽는 노인 - 루이스 세풀베다 장편소설, 열린책들

주인공: 안토니오 호세볼리바르, 엘 아딜리오 거주, 연애소설을 읽음

치과의사: 루비쿤도 로아차민, 안토니오에게 책을 가져다 줌, 정부를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비난

수아르족: 안토니오가 아모존에서 살 수 있도록 도와줌. 자연을 소중하게 여김. 안토니오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하지만 부족원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음. 


암살쾡이의 복수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암살쾡이는 새끼를 잃습니다. 사람들은 이유 없는 사냥을 시작했지만, 암살쾡이는 이유 있는 복수를 시작하고 사람들을 해칩니다. 인간들은 더 많은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암살쾡이 사냥을 합니다. 
 
암살쾡이는 안토니오와의 싸움으로 죽지만, 안토니오는 자연의 균형을 깨드리는 것들을 비난합니다. 경험이 한 사람의 주된 감정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안토니오의 자연을 향한 마음은 수아르족과 함께 지낸 시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날카로운 문명에 우월의식을 갖은 백인들은 자신들의 방법으로 무례하게 아마존에 쳐들어옵니다. 파괴되는 자연 속에서 이익을 추구하려는 이들에게 울림을 주었으면 하는 책입니다. 
 


"노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을 읽었다. 그의 독서 방식은 간단치 않았다. 먼저는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었고, 역시 그런 식으로 문장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이렇듯 그는 반복과 반복을 통해서 그 글에 형상회된 생각과 감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p.64)

▶책을 읽는 안토니오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음절을 음식을 먹듯 음미하는 그의 모습이 책을 좋아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책을 어떻게 읽는지보다는 책을 얼마나 읽는지에 무게를 두는 사회 속에서 안토니오의 모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휘리릭 읽기보다는 꼭꼭 씹어 읽으며, 단어와 문장을 머릿속에 남기고, 그 단어와 문장들을 자신의 것으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들은 죽음을 죽음 자체의 행위라고 믿었다. 죽음은 참혹한 것이지만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다."(p.143)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 최근 읽은 책에서 "죽음이 임박했을 때 갑자기 생기는 삶에 대한 애착은, 우리가 흥미를 잃은 것은 목적이 보이지 않는 삶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영위하는 삶의 일상적인 형태라는 것, 그리고 우리에게 불만이 생기는 것은 인간의 경험이 돌이킬 수 없도록 음울하기 때문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특정한 방식 때문이라는 것을 암시한다."라고 합니다. 죽음은 죽음 자체의 행위 일뿐입니다. 삶이 있다면 죽음은 당연하게 세트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거부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지요. 
 
" (역자 해설) 그는 오늘날의 세계를 흔히 <지구촌>이라고 표현하지만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의 비문명 지역이나 저개발 지역을 배제하는 지구촌이란 한낱 껍데기에 불과하며, 그것을 단지 정보 통신을 장악하고 소유한 국가나 개인 또는 그것에 관심을 가진 자들 만을 위한 거짓 구호라고 질타한다."(p.173) 
▶지구촌, 세계는 하나, 글로벌이라는 단어들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합니다. 잘 포장된 단어 속에 피해를 받고 있는 이들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할 때입니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열린책들, <루이스 세풀베다> 저/<정창>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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