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인터넷에서 읽었던 글, 우연히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 우연히 만났던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려서 알게 된 책이 바로 <죽은 자의 집 청소>이다. 잊을 만하면 나의 눈과 귀로 다시 만난 책이다. 드디어 몇 번의 우연 같은 인연으로 책을 도서관에서 빌렸다.
심장의 박동으로 산 자와 죽은 자를 나눈다. 이것은 신체적인 구분이다. 정신적으로 나누자면 복잡해진다. 몸은 살아있지만 정신이 죽은 자도 있다. 한 인간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둘로 나뉠 수 있다는 사실은 이상하게 들린다. 몸도 살아있고, 정신도 살아있다면 좋겠지만 한 인간에는 부조화가 함께 존재하기도 한다.
작가소개-김완
서울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고, 대학에서 시(詩)를 전공했다. 출판과 트렌드 산업 분야에서 일하다가 전업작가로 살고자 삼십 대 후반에 돌연 산골 생활을 했다. 그 후 취재와 집필을 위해 몇 년 동안 일본에 머물며 죽은 이가 남긴 것과 그 자리를 수습하는 일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후 귀국하여 특수청소 서비스 회사 ‘하두윅스’를 설립하여 일하고 있으며,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는 죽음 현장에 드러난 인간의 삶과 존재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작가의 소개를 읽고 내 머릿속에 엇박자가 났다. 시-출판-작가-특수청소 서비스 회사를 거친 작가의 삶이 내가 예상한 직업 경로는 아니었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새롭게 창조해 내는 출발에서 인간이 남긴 흔적을 지우는 일이라니. 누군가의 죽음이 깃든 장소를 간다는 사실도 내게는 조금은 무섭게 느껴졌다. 자신과는 연결고리가 없는 철저하게 타인이었던 누군가의 흔적이 남은 곳. 저자는 죽은 자의 집과 살아있지만 죽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집도 치운다.
책 속의 <분리수거>편에서는 자살 직전에 분리수거를 하고 착화탄으로 자신을 실수 없이 죽이기 위해서 현관문의 좌우와 위아래 틈 역시 청록색 천면테이프로 꼼꼼하게 막아놓은 누군가의 집이 등장한다. 그 건물을 청소하는 사람에게 ‘착한 분’으로 기억되는 한 여인의 집이었다.
“그 착한 여인은 어쩌면 스스로에게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죽인 사람이 되어 생을 마쳤다. 억울함과 비통함이 쌓이고 쌓여도 타인에게는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고, 남에겐 화살 하나 겨누지 못하고 도리어 자기 자신을 향해 과녁을 되돌려 쏘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죽일 도구마저 끝내 분리해서 버린 그 착하고 바른 심성을 왜 자기 자신에겐 돌려주지 못했을까? 오히려 그 바른 마음이 날카로운 바늘이자 강박이 되어 그녀를 부단히 찔러온 것은 아닐까?”(p.27)
저자는 떠난 사람의 자리를 치우면서 그 사람을 생각한다. 자신과 접점이 없는 누군가의 행복보다는 안타까움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품은 생각들이 떠난 이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가난에 눈이 멀어, 혹은 가난에 눈이 뜨여 그 어떤 것에서든 궁핍의 냄새를 찾아내는 데 솜씨를 발휘하는 청소부. 그 탁월한 솜씨가 행여나 가족에게 옮지는 않을까 늘 전전긍긍한다. 그의 시선 닿는 곳곳에서 가난의 상징이 기지개를 켜고 몸을 일으킬 준비를 한다. 그가 보는 세계에서 빈익빈은 일상적이고 지당하다. 부익부는 먼발치에서 그저 누군가 읊조리는 대로 들어만 봤을 뿐 일찍이 경험해 본 바가 없다. 가난은 가난과 어울려 다니며 또 다른 가난을 불러와 친구가 되고, 부는 부와 어울리면 또 다른 풍요를 불러오는 것 같다.”(p.42)
저자가 가는 곳에는 유독 ‘가난과 고독’이 짙게 물들어 있다. 비슷한 성질인 가난과 고독은 같은 극처럼 서로를 밀어내면 좋으련만 성질을 비웃는 듯 서로를 강하게 끌어당긴다. 강한 힘으로 따로 떼어 놓으려 해도 붙어서 좋을 것도 없을 텐데, ‘가난과 고독’은 착 달라붙어 있다. 책을 통해서 내가 모르는, 내가 외면하고 싶은 누군가의 가난과 고독이 느껴진다.
자신의 궁핍을 찾아내는 솜씨가 가족에게 옮길까 봐 걱정하는 저자. 저자는 궁핍을 찾아내지만 자신의 손을 거쳐서 궁핍의 흔적을 지운다. 찾지만 없애는 행위가 동시에 일어나는셈이다.
저자는 “그동안 우리 사회는 죽음에 대해 경도되고 그 엄숙함에 지나치게 몰입한 탓에 죽음에 관한 언급 자체를 불경한 일로 여겼습니다. 어쩌면 이 기록도 그런 면에서 급진적이라고 할 만한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죽음을 돌아보고 그 의미는 삶과 존재에 관한 면밀한 진술은 오히려 항바이러스가 되어 비록 잠시나마 발열하지만 결국 우리 삶을 더 가치 있고 굳세게 만드는데 참고할 만한 기전이 되리라 믿습니다.”(p.249)라고 전한다.
죽음이 깃든 누군가의 흔적을 읽었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삶과 존재에 대한 생각을 더 떠올리게된다. ‘누군가는 쓸쓸하게 죽었으니 나는 잘 살아야지.’를 품은 것은 아니다. 삶이라는 것은 한정적이다. 아무리 신에게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지구에 머무는 시간을 늘려달라고 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태어나면 어찌 되었든 죽음이라는 결말이 준비되어있다. 방식은 다르지만 정해진 결말을 피해 갈 수 있는 이는 내가 아는 한 지구 상에 단 한 명도 없다.
‘죽음’은 필연적인 것인데도 늘 멀게만 느껴진다. 단어에서 스멀스멀 풍기는 냄새가 늘 환영받지 못한다. 나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면 타인의 죽음을 가볍게 느낄 수 없다. ‘하루’라는 삶을 채우는 일 역시 무겁다. 내 삶과 죽음의 무게를 알아가는 길은 타인을 내 길에 올려놓는 행위가 같지 않을까?
저자에게 일을 부탁하는 사람들은 저자가 하는 일이 주변에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보이지 않아서, 보려고 하지 않아서 나를 둘러싼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다.
<죽은 자의 집 청소>를 통해서 보지 못해 몰랐던 일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저자의 방식으로 보여준 애도 속에서 나 역시 모르는 이들을 향해서 고개를 숙인다.........
![죽은 자의 집 청소:죽음 언저리에서 행하는 특별한 서비스, 김영사, 김완](https://image1.coupangcdn.com/image/affiliate/banner/7914149765c3f5b4cc220615f086027d@2x.jpg)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물원 - 앤서니 브라운, 논장, 2019 (0) | 2022.06.30 |
---|---|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 사용법 – 김민정, 작가, 2020 (0) | 2022.06.21 |
첫 번째 질문 - 오사다 히로시 글, 이세히데코 그림, 천개의 바람 (0) | 2022.06.14 |
흐르는 강물처럼(Like the Flowing River)-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08 (0) | 2022.06.01 |
타이탄의 도구들 - 팀 페리스, 토네이도, 2019 (3) | 2022.03.05 |